AI는 외로움을 측정할 수 있지만,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외로움 신호를 읽기 시작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AI 반려로봇 등이 홀로 사는 노인의 생활을 살피고, 고립·은둔 위험을 조기에 포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추산한 고립·은둔 위험 청년 규모가 최대 54만 명에 이른다는 소식까지…
인공지능이 사람의 외로움 신호를 읽기 시작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AI 반려로봇 등이 홀로 사는 노인의 생활을 살피고, 고립·은둔 위험을 조기에 포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추산한 고립·은둔 위험 청년 규모가 최대 54만 명에 이른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관찰하고 대응해야 할 공공 의제가 됐다.
동시에 한국의 AI는 연구실을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국내 AI 특허 출원은 2015년 2,521건에서 2023년 17,609건으로 늘어 약 7배가 됐고, AI 특허를 출원한 기업 수도 같은 기간 921개에서 6,293개로 증가했다. AI가 소수의 거대 기업만의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기업과 조직이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만 15세 이상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모두의 AI 실험실 AI 서비스 경진대회’를 열어 개인·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할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것도 같은 흐름에 있다. 이 대회는 AI를 소비하는 사람을 넘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서비스를 만드는 시민을 늘리려는 시도다.
이 세 소식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AI가 우리 삶에 깊이 들어올수록, 우리는 무엇을 기술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의 몫으로 남겨야 하는가.
AI가 외로움의 징후를 측정하는 일은 분명 유용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대화가 줄었는지, 외출이 감소했는지, 수면이나 생활 리듬이 달라졌는지 등을 감지하면 위험 신호를 놓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홀로 사는 고령자나 사회적 관계가 끊긴 사람을 지원하는 현장에서는 작은 변화의 조기 발견이 실제 안전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측정은 관계가 아니다. AI가 “오늘은 대화가 적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과 누군가가 실제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나요?”라고 묻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신호를 처리하지만 후자는 맥락을 이해한다. 전자는 이상 징후를 분류하지만 후자는 침묵 속에 있는 사람의 자존심과 망설임, 도움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다.
더구나 외로움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순간 새로운 위험도 생긴다. 누구의 대화가 수집되는지, 어떤 표정과 말투가 위험 신호로 분류되는지, 오판했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해야 한다. 돌봄 기술이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편리함보다 먼저 동의, 설명 가능성, 인간의 최종 판단이 보장돼야 한다. 외로운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일상을 감시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 특허의 급증도 같은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출원 건수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역량의 확대를 보여주지만, 그것만으로 혁신의 질이나 사회적 성과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최근 분석에서도 분야별로 기술 개발과 기술 융합의 속도에 큰 차이가 있었고, 생명의료·헬스 분야는 특허 출원이 크게 늘었음에도 새로운 기술 결합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기술의 양적 팽창과 실제 문제 해결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모두의 AI’가 중요하다. AI를 잘 아는 소수에게만 사회 문제 해결을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돌봄 노동자, 교사, 장애인, 청년, 노인이 자신의 문제를 직접 말하고 기술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완벽한 알고리즘보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 제기한 서툰 질문이 더 나은 출발점일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모델을 만들었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기술이 포착한 신호를 누가 책임 있게 해석하는지, 서비스에서 배제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연결하는지, 효율성 뒤에 숨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키는지가 더 중요하다.
외로움을 알려주는 기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기계가 알려준 신호를 보고 실제로 문을 두드릴 사람도 필요하다. AI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올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일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진다. 기술은 연결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만, 연결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